[위클리 서울=최규재 기자] 강기갑 전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미생물 농법이 확산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 마이크로 하면 작은 것이고 바이오 하면 생명이다. 바이옴에는 좋은 미생물도 있고 나쁜 미생물도 있고 중간 지대를 지키는 미생물도 있다. 이 모두를 작은 바이옴 미생물의 총집합체라 할 수 있다. 나쁜 미생물이라고 해서 제거해선 안 된다. 서로 상생하며 견제하며 경쟁하도록 조율해야 한다. 정치와 비슷하다. 제가 이것을 직접 농사로 실천하고 그 결과를 보니까 기가 막히더라. 가축의 사료를 발효시켜서 주면 사람들에게는 발효식품을 먹이는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온다. 퇴비가 땅을 살리고, 그 땅에서 자라난 작물들이 사람들의 식탁을 살리는 것이고, 그 식탁을 살리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핵심 비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축산단체들에게 다 함께 하자고 매번 요청을 드리고 있다. 또한 생산자만 이 운동에 동참해선 안 된다. 그러니 소비자도 포함하는 '한살림'과 같은 소비자시민모임이 생긴 것이다. 시민단체, 축산 단체, 친환경 단체 등이 포함된 한국마이크로바이옴협회를 만들어졌고 국회에서 자주 포럼도 연다. 이런 활동을 전국적으로 펼치는 운동을 하고 있다.
총선 이후 사업 전개 상황은 어떤지. 정치인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나.
- 국회에 연구단체가 있다. 현역 국회의원 10명만 모이면 지원금이 나온다. 제가 지금 의원은 아니지만 원내 의원들에게 ‘마이크로바이옴 만들어주시오’ 부탁했는데, 지금은 조금 섭섭한 상황이다. 선거 끝나고 당선되니까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래서 얼마전 국회에 다녀오지 않았나. 마이크로바이옴 프로젝트, 잘 진행될 수 있을지.
- 이번에 당선된 의원들 섭외를 했더니, 서로 진영을 짠 것 같더라. 이틀 동안 국회 가서 부탁했고, 주리를 틀고 앉아서 사람들 만났는데, 반응이 예전 같지 않더라. 당선 되자마자 전년도처럼 의원들 모집하려고 나섰는데 늦은 감이 있더라. 예전이랑 분위기가 달라졌다.
강 의원이 독점권을 행사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국민 건강이 걸린 문제다. 어떤 마음으로 사업에 임하고 있는지.
- 한때 국회에 있었지만, 제 인생은 농부 인생이었다. 정치는 그 가운데 하나의 수단이었고 인생 중간의 깜짝 이벤트 같은 것이었다. 정치는 농민을 대표하면서 농촌을 살리고자 했던 수단이었다는 얘기다. 저는 평생 먹거리 문제에 천착해왔다. 국회에서도 그랬었고, 농사를 짓는 현재도 그렇다. 우리 국민 식탁에 대한 문제를 늘 고민하지, 제 입신을 위해 일한 적 없다. 입신을 위해 일했다면 그렇게 빚도 지지 않았을 것이다(웃음). 이 사업과 관련해선 절대적으로 여야 의원들이 도움이 필요하다. 국민 식탁 문제 아닌가. 몇 년 사이 마이크로바이옴 관련 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했고 이 분야에 대한 다양한 기술개발과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가기 위해서는 이제 국회도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 대한 산업체, 연구자, 농민 등 여러 주체와 소통하고 정책 방향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점차 커져가는 사회적 요구를 받아 연구모임을 구성하고 현 국회에서도 그 활동이 이어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의 등장이 강 전 의원 금전적 문제 해결에 영향을 줬는지. 국회에 있을 때나 귀촌했을 때나 빚이 많았다고 했는데.
- 돈 버는 데에는 재능이 없다. 이제는 그저 건강을 지켜야 할 나이다. 국민 건강 지키기 위해선 식탁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 뿐이다. 미생물 번식을 위해 흙을 어떻게 살리느냐, 이런 문제를 고민하고 있을 뿐이다. 한 때 빚이 많았는데, 무슨 자랑도 아니고 빚 청산 얘기는 함구하겠다(웃음).
우리나라 농업 문제 전반에 대해 논하자면.
- 농업·농촌·농민 문제는 전국민의 문제이고, 인류의 문제다. ‘보릿고개’를 겪어본 사람들은 식량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수입농산물들이 범람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농업이 귀한 줄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국회의원을 하면서 농업의 중요성을 늘 국회에 역설했고, 온몸을 던져가며 의정활동을 했다. 그럼에도 현재 농업 문제는 여전히 소홀히 다뤄지고, 뒤로 밀리고 외면당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 문제는 일반 산업과 달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농사라는 게 사람의 힘으로만 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정 정책이 체계화돼서 구축되고 갈수록 진화되는 흐름으로 하나의 틀로 쭉 이어가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단절되고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는 식량의 위기를 겪으면 농업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그때 되면 생산기반이 무너지거나 없어져서 못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수입농산물과 차별화되는 농사를 짓는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지원하는 정책도 나와야 한다.
2021년까지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산하 좋은농협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농협에 대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 김대중 정부 때 농협과 축협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국회에 진술인으로 출석해 발제도 했었다. 협동조합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잘 알고, 큰 소망으로 끌어안고 활동했었다. 물론 한국의 농업·농촌 문제를 풀어가는 데 한계가 있지만, 협동조합이 역할과 기능을 제대로 하고, 위상이 바로 서면 우리 농업이 국민들의 식탁과 건강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농협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농협은 대한민국 경제계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했지만, 농업·농촌·농민은 그야말로 여전히 ‘낙후산업’, ‘외진 농촌’, ‘소외된 계층’이라는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힘없는 다수의 농민들을 조직으로 짜서 모으면 경쟁사회에서 역량을 갖춰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취지에서 협동조합이 생겼다.
예전에는 생산에 들어간 비용과 노력이 70~80%를 차지했고, 판매유통은 20~30%에 불과했다. 지금은 뒤집어졌다. 수익을 내는 데 20~30%의 생산비가 들고, 가공·판매·유통이 70~80%를 차지한다. 협동조합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중요해졌음에도 그 기능은 상실된 상황이다. 근본적으로 농협 자체가 농민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하는 조직으로 가야 한다. 농민이 슬플 때 농협도 함께 슬퍼하고 농민이 기쁠 때 농협도 같이 기뻐하는 구조가 돼야 한다. 이런 구조가 안 되다보니 ‘농협 따로, 농민 따로’, 지역농협은 또 ‘지역조합원 따로, 지역조합 따로’ 식이다. 살림살이가 함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큰 틀에서 이 부분을 제대로 설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 분야, 남북이 협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 북한은 여러모로 백척간두에 서 있다. 북한 주민들은 늘 굶주리고 있고, 당국은 무기 개발하느라 정신이 없다. 남한의 경우 무기 개발과 별개로 상대적으로 경제성장이 잘 된 편이다. 서로 평화적으로 교류를 하려면 북한의 자원을 수입해야 한다. 쌀이 남는 경우도 많으니 북한에 쌀을 지원하고 북한의 풍족한 자원들과 물물교환 하듯 협치하고 상생해야 한다. 기술 지원 문제도 연관된다. 이를테면 러시아 지하자원과 가스 등 에너지 부분을 공급받으려면 기술적으로 북한에게 지원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먼 얘기 같지만 나아가 철도가 뚫리면 유럽까지 물류 교환이 가능하며 그렇게 되면 상생할 수 있다.
과거 정치인이었던만큼 정치 얘기도 잠시 짚고 넘어가겠다. 얼마전 총선 결과와 관련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나.
-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국민들이 뽑았다. 국민들 삶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 정서와 가치와 지향성을 바탕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해야 한다.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다. 대통령 자신이 뭐든 하고 싶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다. 장애물이 있고 상대방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슬기롭게 정리해야 한다. 자신의 목적이 있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고, 특히 대통령이 됐으면 검사 당시 가졌을 적 품성이나 자질과 관행 습관 가치관을 내려놓아야 한다. 검사는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으로서 국민들에게 나아가야 하는데, 검사 때 가지고 있었던 타성을 계속 지고 가는 듯하다. 정치인들은 겸손해야 한다. 과거엔 임금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권위를 내려놓고 겸손해야 한다. 이번 총선은 국민의힘에서 만들어낸 대통령이니 여당에 대한 심판일 수 있다.
정치 선배로서, 윤 대통령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나.
- 윤 대통령은 정치 경력이 전무하지 않았나. 책임자로서 정치적 한계도 있었고 전문성도 제한적이지 않았나 싶다. 요즘 경제 문제로 다들 어려운데 국민 요구를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도 있다. 야당과의 대화도 안되는 것 같다. 대통령 주변 전문가들에게 보완하고 코치해야 하는 임무가 있는데 그런 부분도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구체적인 정책 얘기가 없어 안타깝다. 국민들에게 자꾸 시비 거는 듯한 인상이다. 이런 부분 조율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는 다시 할 일 없다고 했지만 상황에 따라 사람 마음은 변하기 마련이다. 농사일에만 전념하겠다는 생각인지.
- 제가 국회에서 정치할 때도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들이 상당히 많았다. 정치엔 관심도 없었고, 정치 입문 제안을 극구 반대하다가 어쩔 수 없이 사명감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최선을 다했고 지금은 미련도 여한도 없다. 제가 하고 있는 이 농법이 실제 우리 농업, 농촌, 농민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식탁을 살려서 국민 건강을 살려내는, 아주 중요한 사업이라는 생각만 하고 산다. 그렇게 믿고 있고, 이제는 나이도 찰 만큼 찼고 죽을 준비도 해야 한다. 저에겐 이제 자연과 함께 해야 할 사회적 역할이 있다. 만약 이것도 사회 운동이라면 이 방향으로 계속 밀고 나가야한다는 생각 뿐이다.
국회에 있을 때엔 이른바 ‘공중부양’ 사태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여전히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은데, 요즘 어떤 생각이 드나.
-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농업운동을 하다보니 특정 정당에 편승할 일이 없다. 좌우 문제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저는 국회 있을 때 양극단의 평가를 받았었다. 저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말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좋아했던 분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만, 당시 저를 그렇게 싫어했던 사람들에게 제 진심을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게 후회로 남는다. 오해가 많았으니 말이다. 국민들이 폭력 국회로 인식하는데 일조했기에 돌이켜보면 부끄럽기도 하다. 지금에 와서 이러쿵저러쿵 해명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 정치적 발언을 할 기회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먹거리 문제가 정치 이슈화 된다면 농업인으로서 국민들 기본적 행복을 지키기 위해 운동에 나설 것이다.
우리사회 큰 어른들이 하나하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과거 노회찬 의원이 떠나고 최근 홍세화 선생도 영면했다. 누구에게 기댈 것인가에 대한 우려도 있고 상심도 있다.
- 기대치가 높을수록 희망도 커진다. 알고 보면 그런 상징적인 분들이 위로나 희망을 준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건 세월이 가면 변화한다. 특정 몇몇 사람에 기대하면 안 된다. 국민 개개인이 자기 양심에 따라 소리쳐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모이면 삶이 되는데, 거기에 대한 지향성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 실천으로까지 절박감과 진정성과 열정을 갖고 행동하면 이게 세상을 바꾸고 정치를 바꾸고 환경도 진화시킬 수 있다. 행동하는 건 꼭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기도를 할 수 있고 말 한마디라도 양심적으로 할 수 있다. 시골에서 농사만 열심히 지으면서 염원을 갖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저도 매일 한 시간씩 묵상하고 기도한다. 그렇게 삶을 이어간다. 이 세상을 바꾸는데 누가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기대감만 갖으면 안 되고 개인이 매일매일 순간순간을 자신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